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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 전쟁의 진원지 제천!
남한강 역사문화 유적의 보고 제천!

우리 堤川(제천)지역은 예로부터 '義(의)'를 숭상하는 곳으로 '義原(의원)' 또는 '義泉(의천)'이란 별칭을 갖고 있을만큼 국내 義兵(의병)의 선두이자 중심지였던 곳으로 韓末(한말) 義兵抗爭(의병항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義兵(의병)의 고장이다.

堤川義兵(제천의병)이란? 제천을 비롯한 사군지역(제천, 청풍, 단양, 영춘)에 지리적, 학문적, 혈연적 연고의 기반을 둔 韓末(한말)의 義兵(의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시기에 따라 그 외연(外延)이 때로는 영남, 강원, 경기지역, 나아가서는 서북과 해외에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 근거지는 堤川(제천)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따라서 湖左義陳(호좌의진)과 李康秊에 관한 핵심적 자료를 남겨둔 朴貞洙(박정수)도 堤川(제천)은 義兵(의병)의 처음이요, 마지막인 고장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장병이 제일 많았다고 단언한 것이다.

을미의병 관련사진

우리 堤川(제천)지역은 예로부터 '義(의)'를 숭상하는 곳으로 '義原(의원)' 또는 '義泉(의천)'이란 별칭을 갖고 있을만큼 국내 義兵(의병)의 선두이자 중심지였던 곳으로 韓末(한말) 義兵抗爭(의병항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義兵(의병)의 고장이다.

堤川義兵(제천의병)이란? 제천을 비롯한 사군지역(제천, 청풍, 단양, 영춘)에 지리적, 학문적, 혈연적 연고의 기반을 둔 韓末(한말)의 義兵(의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시기에 따라 그 외연(外延)이 때로는 영남, 강원, 경기지역, 나아가서는 서북과 해외에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 근거지는 堤川(제천)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따라서 湖左義陳(호좌의진)과 李康秊에 관한 핵심적 자료를 남겨둔 朴貞洙(박정수)도 堤川(제천)은 義兵(의병)의 처음이요, 마지막인 고장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장병이 제일 많았다고 단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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